안녕하세요, 미스테리함 채널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의 영상은 "아즈텍 문명의 황금도시 엘도라도는 실제했던가?"라는 주제로 영상을 준비하였으니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 되시길 바라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엘도라도는 남아메리카의 신화적인 황금 도시로, 수많은 탐험가와 모험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이 전설은 아즈텍 문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아즈텍과 잉카 문명에서 발견된 막대한 금과 은의 재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엘도라도 전설의 기원은 콜롬비아의 무이스카 족에서 시작됩니다. 무이스카 족의 왕은 금가루로 몸을 덮고 신성한 호수인 카타비타 호수 한가운데에서 보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이 의식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소문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엘도라도라는 용어는 스페인어로 '금으로 덮힌 자'를 의미하며, 처음에는 금으로 몸을 덮은 왕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1650년대까지 수천 명의 유럽인들이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남미의 정글, 평원, 산, 강을 탐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엘도라도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과타비타 호수를 준설하여 약간의 금을 발견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금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엘도라도가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탐험을 계속했습니다.
이러한 바람이 후대에까지 전해져 엘도라도 전설은 수많은 소설, 영화, 게임 등에 영감을 주었으며,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 영화 "엘도라도"가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엘도라도"는 2000년에 개봉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두 사기꾼 친구인 '트리오'와 '미겔'의 모험을 그립니다. 1519년, 스페인에서 트리오와 미겔은 도박판에서 전설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로 가는 지도를 얻게 됩니다. 이들은 엘도라도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순시형에게 쫓기다가 출항 준비 중이던 배에 몰래 탑승하게 됩니다. 배에서 탈출한 후 그들은 결국 엘도라도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모험을 겪게 됩니다. 이 영화는 엘튼 존이 작업한 OST도 유명하며, 그의 음악은 두 주인공의 모험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해줍니다. 영화는 유모와 감동을 적절히 섞어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엘도라도의 전설과 두 주인공의 우정, 그리고 그들이 겪는 모험을 통해 관객들은 황금 도시에 신비와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도라도는 현실이든 아니든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인류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엘도라도 전설은 여전히 매력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엘도라도 전설은 인간의 탐욕과 모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탐험가들이 황금을 찾아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엘도라도는 황금이 땅과 인간의 헛된 욕망을 잘 표현하는 단어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의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꿈의 도시 엘도라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세기 경, 2천 명의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리던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714년 동안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였습니다. 700년이 지나면서 이슬람 교도의 힘은 쇠퇴하였고, 이베리아 반도의 끝자락에 있던 그라나다 왕국이 점령되면서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이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난 이사벨 리사벨은 이웃나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와 결혼하여 두 나라가 협공하여 이슬람을 몰아내고 스페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참고로 이사벨 1세는 아메리카를 탐험한 콜럼버스를 지원한 여왕으로 유명합니다. 1504년, 53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사벨과 페르난도 사이에 통해서 손자인 카르로세가 스페인을 통치하면서 스페인 통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 과정에서 스페인 왕조는 많은 자금을 지출하였습니다. 의외로 아랍 통치를 무너뜨리고 얻은 황금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복 과정에서 이슬람 교도로부터 빼앗은 땅은 해당 귀족이 가지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카스티야 왕국은 전쟁으로 인해 재정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왕국은 재정난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식민지나 무역, 황금 등의 유혹에 약해져 있을 때, 콜럼버스가 마르코 폴로가 기록한 지붕까지 황금으로 덮여 있다는 섬을 찾겠다고 하여 카스티야 왕조의 이사벨 여왕의 지원과 지지를 얻어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492년에 남미의 에스파냐 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네 번에 걸친 항해 중에 끊임없이 황금을 찾았지만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고, 결국 실망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이 굳게 믿던 인도 땅에 도착했지만, 15년이 지난 후에 그곳은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디언'이라는 이름도 인도라는 착각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신대륙을 향해 제3의 콜럼버스들이 군인, 도둑, 광신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대양의 선단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1511년, 에스파냐 왕실은 콜럼버스의 아들인 디에고 콜론 제독에게 신민지 개척 업무를 총괄하게 하였고,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쿠바 정복과 통치 임무를 맡아 300명의 쿠바 정보 원정대를 꾸려 쉽게 정복하였습니다. 이렇게 쿠바를 아메리카 정복의 발판으로 삼고 멕시코에 버티고 있는 아즈텍 제국과 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3차 탐험대에 아즈텍을 무너뜨린 코르테스가 합류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코르테스가 원정 대장이 되었습니다. 코르테스는 상관인 바 신민지 제독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명령을 받아 1519년 2월 10일, 600명의 스페인 인과 300명의 안티아스 원주민, 피레 신문의 대포를 실은 배와 함께 유카탄 탐험에 나섰습니다. 나중에 아즈텍 제국에 모래질 당한 주변의 원주민들과 합세하여 인구 500만의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고 황금을 탈취하여 멕시코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스페인은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포함하는 신성로마 제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콜롬비아의 보고타 평원에 사는 무이스카 족의 전설이 전 유럽을 휩쓸고 골드러시 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장되었지만, 이 기회에 천금을 찾기 위해 아메리카로 몰려들었습니다.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후 얻은 황금은 스페인을 유럽의 최고 부자 나라로 만들었지만, 더 많은 황금을 찾기 위한 탐욕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축된 황금 루트는 남미로 향하게 되어 유카탄 반도를 대규모 조사하는 원정대가 출항하게 되었고, 153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와 에콰도르 지역의 쿠스코를 합병하여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잉카 제국은 찬란한 고대 문명이었지만, 약탈물로서 금 6톤, 은 60톤을 얻었지만 스페인 왕조나 탐험가들의 야욕은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점에 유럽 탐험가들은 콜롬비아 보고타 고원 지대에 사는 무이스카 족에 관한 의식이 소문처럼 퍼져나가 모두 이곳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무이스카 부족은 새로 취임한 초장이 온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데, 의식이 끝나면 신성한 호수에 들어가 몸을 씻고 부족민들은 호수로 가서 금과 온갖 보석들을 던진다는 종교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이스카 초장을 스페인어로 엘라도라고 불렀는데, 이는 금가루를 칠한 인간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나중에는 황금의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호수는 콜롬비아의 보고타 고원 지대에 있는 구아타비타 호수입니다. 초기에는 아무도 호수의 위치를 알지 못했고 아마존 상류 정도로 추정되었다 합니다. 이 호수는 해발 3,000m에 있는 화구에 생긴 호수입니다.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피사로는 1541년 탐험대를 조직해 안데스 산맥을 넘어 현재 에콰도르 동부 지방까지 조사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영국 탐험대와 네덜란드, 프랑스 탐험대가 있었으나 모두 황금의 도시를 찾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이 호수 바닥에 황금 봉헌물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1898년 과타비타 호수의 물을 모두 빼내는 일이 벌어졌고, 호수 바닥을 샅샅이 뒤졌지만 진흙에 엉킨 황금 장신구 몇 개만 겨우 발견될 뿐이었습니다. 20세기 초 황금 뗏목이 발견되었지만, 유럽으로 옮기는 도중 독일 브레멘 근처 창고의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고고학자와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다양한 조사단이 꾸려졌지만, 어느 누구도 엘도라도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1969년 무이스카 뗏목이 발견되면서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발견된 각종 유물들이 스페인 연대기에 기록된 내용들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엘도라도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과타비타 호수를 자연공원으로 지정해 엘도라도는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콜롬비아 보고타 평원에 사는 무이스카 족은 약 30만 명으로,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과 페루의 잉카 문명, 그리고 콜롬비아의 세 번째 문명이지만, 금이 다른 문명보다 더 많은 것도 아니고 인간의 야욕으로 멸망을 겪은 또 하나의 문명이 된 경우입니다.
이후 아마존 강이 발견되었는데, 1541년 2월에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피사로의 동생 곤살로 피사로를 대장으로 하는 탐험대가 출발하였습니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몇 달 동안 밀림을 헤매다가 아마존강 상류의 한 갈래인 지금의 나포 강에 도달했습니다. 곤살로 피사로는 믿을 만한 부하를 시켜 선발대로 숲속을 살피게 했는데, 선발대 대장이 오래하나 대원 10명을 데리고 강을 따라가던 어느 날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았고 화살을 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곤살로는 1542년 8월에 마침내 대서양으로 빠져나와서 강 이름을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존 부족과 같다고 생각하여 아마존 강이라고 불렀습니다. 1545년 5월, 곤살로는 두 번째 아마존 강 탐험에 나섰지만 아마존 강 어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마존 강은 유럽의 스페인에 먼저 알려졌습니다.
엘도라도는 황금이 땅과 인간의 헛된 욕망이나 야욕을 잘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과연 인간의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요? 황금을 얻기 위한 수많은 원주민들의 죽음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곳은 없지만, 정말로 남겨진 흔적처럼 황금으로 산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 황금 도시일까요? 지금 시대는 잔디밭에서 바늘도 찾아낸다는 시대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번쩍번쩍할 황금 도시를 아직도 못 찾는단 말인가요? 언젠가 그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꿈의 도시, 황금의 도시를 꿈꿔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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