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스테리함] 채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바빌론의 거대한 공중정원이 실재했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오늘의 미스테리 주제는 바빌론 제국의 공중 정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제목 그대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정원이라고 생각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피터팬 중후군처럼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함이 묻어 있다고 스스로 위로 삼고 싶지만, 누가 봐도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다소 맹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소개해드릴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준비하면서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이 아니라 높은 곳에 위치한 정원이라는 사실과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만들어진 정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신 바빌론 제국의 수도를 아름답게 꾸미던 전설적인 정원으로, 느부갓네살 2세가 조성하였습니다. 공중정원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역사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존재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기원전 500년, 바빌로니아에 산림에서 살다가 삭막한 사막으로 시집 온 메디아 왕국의 왕비 아미티스는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빌로니아가 위치한 땅은 비가 잘 오지 않고 땅이 삭막해 꽃과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기후가 아니었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길어 정원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물탱크와 펌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술로 어떻게 이러한 것을 만들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를 쉽게 표현하자면, 오늘날 바닥에서 30층 건물의 맨 꼭대기 높이까지 물을 공급할 정도의 기술입니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마음껏 물을 사용할 수 있지만, 고대에는 이러한 기술 자체가 없었으니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길어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물을 공급했는지 미스테리입니다. 평지의 흙을 쌓아 만들어 작은 산 모양의 노대와 비슷하게 보이는 이곳은 풀과 꽃, 과일나무 등을 많이 심어 놓아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정원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입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왕궁의 광장 중앙에 가로, 세로 각 400m 높이 15m의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60제곱미터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105미터로 오늘날 30층짜리 빌딩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 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놓고, 넓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과 덩굴, 초록 과일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이 피라미드형의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 깔개를 걸어 놓은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곳에서 이렇게 큰 정원의 물을 대는 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 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해 물을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정원의 아랫부분에는 항상 서늘함을 유지하는 방을 많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창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왕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세워진 공중정원은 오늘날 바벨탑과 더불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이름은 구약성서에 남아 있지만, 아름다운 메디아 출신 왕비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벨탑이나 공중정원의 흔적은 볼 수 없지만,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의 표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바빌론의 발굴은 독일 동방 협회에 의해 1899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어,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최전 성기의 궁전, 이슈타르문 성벽 등이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은 그 장엄함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고대 문헌에서 공중정원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그리스 섬에서 이주한 바벨론의 벨 우스루라고 불린 사제이자 코스 출신인 베로수스가 기록한 것입니다. 베로수스가 기원전 290년에 쓴 공중정원에 대한 글은 후대 작가들의 글에서 인용된 것으로만 전해질 뿐입니다. 하지만 바빌론에 대해 그가 기록한 상당수는 고고학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9세기에 광범위하게 바빌론을 재건했다고 여겼던 전설적이며 신성한 아시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세미라미스의 공중정원'으로 불렸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정원이 식량 생산이 아니라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으며, 공중정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파라다이스'로 알려졌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즐거움을 위해 정원을 만드는 것이 고대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에는 부자들이 최소한 각자의 집에 개인 정원을 갖추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에는 꽃과 식물만 심은 것이 아니라 건축물, 조각상, 분수대까지 더해지면서 고대 정원사들은 경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폼페이 같은 곳에서는 프레스코 화가들이 방 안에 들어설 때 마치 정원에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장면을 저택 벽 전체에 그릴 정도로 정원은 모두가 원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정원들은 모두 고대 메소포타미아, 특히 바빌론의 아름다운 공중정원을 모방한 것입니다.
베로수스는 공중정원이 산을 모방해서 만들어졌고, 거대한 나무와 꽃들이 다양하게 심어진 벽돌로 된 높은 테라스라고 묘사합니다. 공중정원은 초목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을 끌어올리기 쉽게 지어졌습니다. 또한 바빌로니아의 왕비이자 메디아 출신인 아미티스의 향수병을 치유하기 위해 고향의 초목과 언덕을 모방해서 정원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왕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몇 가지 출처에 따르면, 공중정원이 기원전 4세기에도 존재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느부갓네살 2세의 통치 후 수세기가 지난 후에 기록되었고, 바빌론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원예나 공학을 잘 모르는 작가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공중정원이 고대 바빌론에 흐르던 유프라테스강 옆에 있었고, 정원에 물을 대기 위해 강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복잡한 기술을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각 층에 오르기 위해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기원전 1세기에 공중 정원에 대해 기록한 그리스의 역사학자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공중 정원이 고대 극장처럼 경사졌으며 높이가 20m에 달했다고 언급합니다. 그는 공중 정원이 기둥 위에 지어졌고, 갈대와 벽돌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고 묘사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정원이 바빌론의 공중 정원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런던 대형 박물관에 있는 니느웨의 아슈르바니팔의 북쪽 궁에서 발견된 부조 판에는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정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실, 몇몇 학자들은 바빌로니아 공중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출처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며, 실제 공중 정원이 있던 곳은 산헤립(BC 705~681)이 건립한 니느웨라고 주장합니다. 니느웨의 정원과 관련한 문서와 고고학적 증거가 충분히 많고, 심지어 니느웨는 종종 옛 바빌론이라고 불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니느웨에 관한 가설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존재했다는 가능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1899년에 고대 바빌론에서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중벽과 이슈타르의 문과 같은 고대 구조물이 발견되었지만 전설적인 정원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바빌론의 남쪽 궁을 발굴하던 중 돔으로 된 방 14개가 발견되었으나, 나중에 그 지점에 발견된 명판을 판독한 결과 창고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강에서 더 가까운 곳과 왕의 궁전에서 다른 곳을 발굴한 결과, 거대한 배수관, 벽, 저장고, 정원을 위한 관계 시설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전설 속의 공중 정원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주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물리적인 문서로 된 증거가 부족하지만, 고대 작가들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대 불가사의 명단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공중 정원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공중 정원이 니느웨에 있었다는 가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늘 그랬듯이 가능성이 높은 위치는 바빌론과 니느웨의 중간 어딘가로 추정됩니다.
고대 불가사의 원본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마른 계단식 언덕에 익숙한 그리스인들에게 이라크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기후에서 진기하고 기발한 관개 시설을 갖춘 공중 정원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빌론에는 몇 가지 종류의 정원이 있었는데, 그리스의 이전 세대 기록에서 미로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처럼 그 규모가 과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불가사의가 된 이유는 그 규모에서부터 그 시대 건축 방식과 관리까지, 과연 그토록 거대하고 웅장한 시설을 어찌 관리했을까 하는 미스테리입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그 자체에 대한 것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경이로움이자 인류의 위대한 노력을 보여주는 고대 7대 불가사의입니다. 언젠가 실제했던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길 기대하며, 이만 영상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