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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쓰인 단어는 35,000여 개, 글자 수로는 17만여 개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이루어진 의문의 괴문서 [보이니치 문서]에 대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보이니치 문서는 중세에 작성되어 근대에 발견된 저자 미상의 문서이다. 형식은 코덱스이고 재질은 양피지이며 한 첩당 16장으로 총 17첩 272장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되나 일부가 분실되어 현재는 240여 장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소유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폴란드계 영국인 서적상인 윌프리드 M 보이니치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작가나 필사자의 인적은 불분명하다. 이 문서에는 다양한 삽화와 함께 지금까지 어느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은 문자와 언어로 약학을 포함하여 식물학, 약초학, 천문학, 광천 요법 등으로 추정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어 주목받았으며, 오늘날에도 문서의 내용을 해독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2009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양피지 일부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종이가 만들어진 시기는 1404년에서 1438년 사이로 추정되었다. 또한 송아지 가죽의 단백질 층상 구조를 정밀 분석한 결과, 세 종이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대에는 양피지나 양피지가 비싸서 얇은 칼로 글자를 긁어내거나 씻어서 없앤 뒤 이를 재활용하는 일이 흔했으며, 보이니치 문서는 재활용되지 않은 종이로 제본되어 문서에 대한 기록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추정할 수 있는 이 책의 첫 번째 주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의 전담이었던 야코부스 신나피우스이다.
보이니치 문서가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15세기 중반보다 100년 이상 후대의 인물이지만, 이보다 이른 시기의 소유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야코부스가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문서 첫머리에 그의 서명이 쓰여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이 문서는 알 수 없는 경로로 프라하의 후기 연금술사였던 게오르그 바레스의 손에 들어갔다. 이 사실은 그가 예수회 수사 아타나시오스 키르허에게 보낸 1639년 서신에서 확인된다. 당시 키르허는 고대 이집트에 쓰인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고 주장하였고, 사전까지 발간하여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바레스가 죽은 뒤 이 문서는 그와 친분 관계가 있던 야한 마르치에게 넘어갔으며, 마르치 역시 이 문서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려 노력하다가 죽기 전인 1665년 다시 키르허에게 보이니치 문서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현지의 내용에 따르면 보이니치 문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 도서관에서 관리하던 책이었고, 야코부스 신나피우스가 루돌프 2세로부터 책을 얻어냈을 것이라 해석이 가능하나 실제로 루돌프 2세가 이 책의 소유자였다는 낭설에 불과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영국의 철학자인 로저 베이컨과 연관성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베이컨은 13세기 인물로 이후의 연대 측정 결과와 모순되어 그가 실제 저자일 가능성은 낮다. 애석하게도 키르허 역시 이 문서는 해독하지 못했는지 이 문서에 대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마르치에게 보낸 편지는 보이니치 문서 안에 동봉되어 어딘가로 이동되는데 중간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다시 발견된 것은 약 250년 뒤인 1903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 프라스카티에 위치한 별장 빌라 몬드라고네이다. 이 건물은 예수회가 매입하여 소유하고 있었으며, 문서는 예수회 사제이자 로마 기숙학교의 교장이었던 피에르 장 베크의 장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베크의 장서는 19세기 중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를 통일할 때 교령을 병합하면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하자 그의 개인 서재로 옮겨간 것으로, 그 이전에는 로마 기숙학교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3년 이전 문서의 행방은 전부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후로 키르허나 다른 중간 소유자가 이 책을 로마 기숙학교에 기증하거나 판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적상인 보이니치는 1912년 7월 12일 예수회가 재정 문제로 빌라 몬드라고네의 장서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다른 서적들과 함께 이 책과 동봉된 키르허의 편지를 사들이게 되었다. 그는 문서에 흥미를 느껴 그 내용을 세간에 공개하고 자신도 오랜 시간 연구했으며, 이때부터 여러 학자들이 문서 해독에 참여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보이니치 문서라고 불리게 되었다. 보이니치 사후 이 문서는 그의 아내를 통해 친구 앤에게 넘겨졌고, 앤은 다시 다른 서적상 한스 크라우스에게 책을 팔았다. 크라우스는 1969년 책을 예일대학교에 기증하여 지금까지 예일대학교 베이네케 도서관에서 보관 중에 있다.
발견 당시부터 정체불명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주목받았고 이에 저명한 언어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무엇을 적은 것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이 문서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언어는 여지껏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그려져 있는 삽화에 약학, 식물학, 생물학, 천문학적 내용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묘사되어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과학이나 철학, 종교 등 광범위한 학문에 대해 쓰인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예 처음부터 의미 없는 낙서이거나 글자를 모방한 예술 작품이나 장식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왔으나, 자세히 조사한 결과 언어의 특성을 닮은 체계성이 발견되었다. 요컨대 이 문서에 쓰인 글은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쓴 낙서 같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이나 문법을 갖고 있는 언어이자 문자 체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언어는 문서가 발견되었던 지역에서 주로 쓰이는 인도유럽 어족의 보편적인 특징과는 다소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어떤 글자는 단어 앞에만 나오고, 다른 글자는 끝에 혹은 중간에만 나오는 경우가 있다. 라틴 문자나 그리스 문자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시피하다. 이러한 양태는 오히려 히브리어 문자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샘종 문자로 보기도 힘든 것이, 대부분의 세모 문자는 좌측에서 읽어 내려가는 좌서 문자인 반면, 보이니치 문서는 우서 문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단어가 한 문장에 여러 번 나오는가 하면, 한 글자만 다른 여러 단어가 비정상적으로 반복되어 나오기도 한다. 특정 글자는 조합이 네 번 연속 등장하는데, 상식적으로 한 문장 안에서 같은 단어가 네 번 연속 등장하는 자연어는 거의 없다. 때문에 이 언어는 평문이 아닌 암호문일 가능성이 있다. 다대다 대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러한 형태가 충분히 가능하며, 다대다 대응으로 만들어진 암호는 차분 기관이나 튜링 기계로도 풀 수 없다.
평광 현미경을 이용한 잉크 시료 분석 결과, 글씨는 9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갈레 잉크로 쓰였으며, 필기구는 깃털펜으로 추정되었다. 이밖에 삽화를 그리는 데 사용된 청색 물감에서 남동석, 미량의 산화구리 성분이, 붉은색 물감에서 적철석, 황화철이, 녹색 물감에서 염화구리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들 역시 전형적인 물감이다. 또, 속지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인 것에 비해 표지는 염소 가죽으로 재단되어 있는데, 가죽의 상태를 비교해 볼 때 저술된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표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유력한 설은 중간에 잠시 이 문서를 소장했던 로마 기숙학교에서 책을 관리하면서 표지를 붙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뒷장에 아주 약간의 로마자 문장이 나오기도 한데, 기이하게도 어떤 언어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다. 인터넷 등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아마추어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중세의 알파벳 캘리그래피와 비교하여 의미를 알아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다. 이밖에 11장에는 고대 고지 독일어로 읽을 수 있는 두 개의 단어가 있으며, 천문학을 다루는 부분에는 3월부터 12월까지 라틴 문자로 적어 놓은 부분도 있다. 그 철자법은 중세의 프랑스나 북서부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의 철자법을 연상시키지만, 원래 적혀 있던 것인지 후일에 적힌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를 두고 외국의 복잡한 문자를 이해하지 못한 유럽인이 스스로 문자를 고안해내 그 언어를 표기한 문서라는 설도 있다.
한 학자는 보이니치 문서를 만주어와 연관지어 해독해 보려고 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식물들이 진짜로 현실에 존재하는 식물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점이 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추측으로 밖에 할 수 없지만, 일부 삽화는 실제 식물과 매우 닮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삼색 제비꽃의 그림이다. 이에 다른 식물들도 분명 무언가의 표본을 관찰하고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실존 여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라, 당대의 지식 수준으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종류를 그려 넣은 것일 수도 있다.
천문학 항목에서는 은하와 은하수로 해석될 수 있는 그림들이 동심원으로 표현되어 있어 화제를 낳았다. 당시에는 아직 은하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천동설이 유효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견해가 없다. 그러나 여인들이 별을 들고 둘러선 삽화에 비추어 전체에 관한 종교적 해석이나 점성술을 나타내려 했다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밤하늘을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별자리나 성단의 분포를 나타내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
책의 페이지 가운데에는 한 장에 많은 그림을 넣기 위해 큰 속지를 접어 넣어 둔 부분도 있으며, 맨 뒷장에는 몇 장의 내용이 뜯겨 나간 흔적도 관찰되었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거나 유실된 것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책의 내용에 관한 중요한 단서가 있었을 것이라거나, 사전 형태에 걸맞는 색인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검증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세계 유수의 암호학자들이 해독하지 못한 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이니치 문서는 오랜 기간 동안 암호학자들이 번역에 매진했지만 제대로 해석해 내지 못해 암호학 역사의 선배라고 불리우나, 한편으로는 워낙 해석이 어려워 누군가가 심심해서 만들어 놓은 의미 없는 문서의 조합으로 보기도 한다. 그림으로 유추해 보면 여섯 가지 분야에 대해 기술한 서적으로, 쓴 사람은 의미를 알고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유려한 필체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전문가들의 관심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장난으로 쓰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양이기 때문이다.
기묘한 그림과 문자, 무엇보다 해석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해석을 해보니 별거 아니었네라고 판단하게 될지라도, 해석하기 전까지는 몹시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