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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 속에 ‘에너지 모이는 방’ 존재 한다

by 미스테리함 2024.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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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

 

 

 

 

동영상으로 바로 보기  ㅡ>>>  https://www.youtube.com/watch?v=vVX5FSSSQOs

 

 

 

이집트 기자 지구에 있는 파라오 쿠푸의 대피라미드의 내부 공간 세 곳에 전자기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러시아와 독일 공동 연구팀은 대피라미드의 파장이 200에서 600m 전파 방해 입자를 조사해 피라미드 내부의 전자기장 분포를 모형화하였다. 다각 분석을 통해 피라미드 내부 공간 세 곳에 전자기 에너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줬다. 여기에는 파라오 쿠푸와 그의 왕비를 위해 만들어진 두 방과 바닥에 미완성된 세 번째 방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피라미드 건축에 쓰인 자재 등의 정보가 부족해 몇 가지 요인을 가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러시아 국립 정보기술 기계 공학대 안드레이 에브리인 박사는 "예를 들면, 우리는 내부에 알려지지 않은 공동이 없으며, 일반 석회석 성질을 지닌 건축자재가 피라미드 안팎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이런 가정을 통해 우리는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기원전 2509년에서 2483년 사이에 이집트를 지배한 파라오 쿠푸 시절 건설되었다. 높이 139m, 너비 230m로 지구상에 남아 있는 피라미드 중 가장 크다. 이번 발견은 고대 피라미드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의 전자기 에너지가 분배되는 방식을 연구하면 고율 센서와 태양전지를 제작하는데 응용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집트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피라미드는 단순한 왕의 무덤이 아니라 일명 천국으로 가는 천국의 계단이었다. 이는 불멸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태양의 신인 라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피라미드는 천상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천국의 계단인 셈이다.

피라미드라는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에서 유래했다. 재미있게도 이를 해석하면 밀가루 케이크라는 뜻이다. 피라미드를 처음 본 그리스인들이 익숙한 삼각형 모양의 케이크를 떠올려 이름을 지었다는 유래가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정작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메르'라 부른다.

피라미드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복합 구조물이다. 파라오는 고왕국 초기까지 신과 같은 존재였고, 훗날에는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살아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고, 죽어서는 사후 세계에서 신들과 함께 이집트를 수호한다고 믿었을 정도로 파라오의 권위는 말 그대로 신과 같은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었다. 피라미드는 공간과 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라미드의 겉모습은 그저 커다란 삼각형 구조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복합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신에게 재물을 바치는 큰 신전과 왕비의 피라미드 등 작은 피라미드도 존재한다. 재미있게도 피라미드 안에는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기 위한 의식용 배를 묻을 구덩이를 비롯해서, 신전과 나일강으로 연결된 긴 도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작은 피라미드라고 해도 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수만 명의 일꾼과 건축 기술자가 필요했고 엄청난 양의 돌이 쓰였다. 물론 크기와 내부 공간의 내실에 따라 공사 기간도 수십 년이 걸렸다. 피라미드 건축 사업은 파라오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왕조의 자존심이 달린 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피라미드는 원래 새하얀 자태를 뽐냈는데, 순백의 석회암으로 외벽이 덮여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벗겨지고 말았지만, 순백의 초고층 건축물이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그 웅장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집트의 남쪽 지역에서도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20년이라는 대장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모든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고 해서 기자의 대피라미드라고 불렀는데, 심지어 고고학자들은 이 피라미드가 원래는 더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맨 꼭대기에 있는 돌이 세월이 흐르면서 손상되어 8m 가까이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쿠푸 왕의 이야기는 독일 베를린 박물관이 소장한 웨스트카 파피루스에 자세히 담겨 있다. 1824년 이 파피루스를 처음 발견한 헨리 웨스트카의 이름을 땃다 파피루스는 이집트가 힉소스인들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인 기원전 1650년에서 기원전 1550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쿠푸 왕의 다섯 왕자가 심심해하는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들려준 신비로운 마법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쿠푸 왕이 가장 완벽한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지혜와 문자의 신인 토트의 비밀문서를 찾는다는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쿠푸 왕의 심술 맞고 잔인한 성격을 비꼬고 풍자하는 이야기도 있다. 쿠푸 왕은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건축하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절대적인 면모가 있는 동시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문명 최초의 피라미드는 고왕국 3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인 조세르가 처음으로 피라미드를 세웠다고 한다. 조세르는 '성스러운 몸'이라는 네체르케트 호루스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상이집트 사카라 지역에 지어진 이 건물은 마스타바 불리는 고왕국 1왕조의 단층짜리 직사각형 무덤이 바탕이 됐다. 조세르의 신하였던 이모테프가 설계를 맡았다. 

원래는 작은 무덤으로 시작했는데, 뒷날 계속 증축을 하면서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가 됐다고 한다.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세계 최초의 돌로 만든 석조 건물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축조 시기는 기원전 26세기 경으로 27년이라는 세월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외벽이 반죽한 백색 석회암으로 덮여 있어 더욱 완전한 각형상이었고, 대기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디온 캡스톤이 씌워져 화려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대 이집트 왕조의 쇠퇴 이후 여러 차례 뜯겨 건축 자재로 전용되었다.

남아 있는 암석들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피라미드는 3,800년 넘게 인간이 세운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고왕국 시대의 피라미드들은 기원전의 학자와 예술가들에게도 이미 현대인이 생각하는 수준의 고대 유적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스트라보, 로마의 플리니우스 등이 대피라미드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이집트의 막대한 외화를 벌어주는 랜드마크이자 관광지로 매년 1,47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다녀간다. 세계에 존재하는 피라미드들 중에 최고봉이라 할 수 있고 여전히 세계 불가사의의 중심에 있는 이집트 대피라미드는 정말 그 몸집만큼이나 많은 신비를 담고 있다. 특히 매우 높은 정밀도와 복잡한 내부 체계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대피라미드를 완벽하게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주랑의 두께는 3m에 달한다. 피라미드와 담장은 약 1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 중간 마당은 그리 넓지 않다. 대피라미드는 이집트 역사상 제일 크고 제일 복잡하고 가장 정확하게 만들어진 피라미드다. 그러나 외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웅장함은 피라미드 내부에 비하면 세발의 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파라오가 묻힌 내실의 복잡하고 정교한 솜씨는 경이로울 뿐이다. 올라가는 통로와 대회랑, 여왕의 방, 왕의 방 등 내부의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물은 대피라미드 이전과 이후의 피라미드에는 없는 것이다. 

유일하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 존재할 만큼 역사적 가치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대피라미드의 웅장한 크기, 복잡도, 정밀도 등을 고려하면 이에 견줄 피라미드는 현재 없다. 이 모든 것들은 건축과 건설, 수학과 천문학, 기하학, 지리학 등에 대한 높은 과학적 지식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며,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한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과, 거기에 필요한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행정력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대피라미드는 파라오 쿠푸가 주인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어디에도 왕을 묘사한 벽화나 상형문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트 학자들은 대피라미드 내부의 낙서와 이집트 연대기, 헤로도토스 등을 참조하여 대체로 대피라미드가 기원전 2560년 무렵 쿠푸왕에 의해 세워졌으며, 공사에는 약 20여 년이 걸렸다고 추정한다. 이집트인들은 대피라미드를 '쿠푸의 아크'라 불렀는데, 이는 '쿠푸의 지평선'이라는 뜻이다. 쿠푸는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로, 대피라미드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뜻은 '우르사리(음으로부터 보다)'이며, 그리스어로는 케오프스라고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쿠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대피라미드들은 이집트 역사에서 고왕국 제4왕조 때의 스네프루, 쿠푸, 카프레로 이어지는 오직 세 왕 통치기에 건설되었을 뿐이다. 나머지 피라미드를 모아봤자 이 시기에 지어진 피라미드 부피의 4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대체 이 시기에 왜 이러한 대공사를 했는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의문이 무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피라미드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을까?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건축물로, 중심부는 노란색 석회암으로, 외장석은 흰색 석회암으로, 그리고 내부의 방과 통로 지붕 등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피라미드에 사용된 블록은 일반적으로 석회암으로, 평균 2.5톤이다. 위로 갈수록 크기는 조금씩 작아진다. 바닥에 있는 어떤 블록은 매우 커서 15톤의 무게가 나가기도 한다. 무거운 블록은 왕의 방 지붕과 그 위에 중량 경감의 방 지붕에 사용한 화강암 블록이다. 이들은 40톤에서 70톤에 추산된다. 

피라미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피라미드의 목적으로 지목되었던 것이 피라미드의 무덤 설이다. 그리고 현재의 정설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왕조 시대의 왕족과 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 피라미드의 원형으로 본 것이 주요한 이유다. 그러나 무덤 설의 의문을 갖고 있는 학자들도 많고, 아직까지는 크게 반박할 만큼의 설득력 있는 가설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피라미드가 왜 무덤이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최초의 피라미드 조세르 왕의 계단형 피라미드에서 미라의 일부가 발견되었을 뿐, 그 이후 피라미드에서는 어디서도 미라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진짜 피라미드도 원래는 미라가 있었지만 도굴당했다는 설도 성립한다. 허나 일찍이 미라가 존재했다면 그 흔적 정도는 당연히 남아 있었을 터이다. 따라서 그 흔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인 듯하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무덤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지하에 유물과 부장품이 있었다. 그런데 왜 대피라미드는 지상에 장례실이 있을까? 또한 기자의 세계 피라미드에는 벽화나 상자가 없다. 미스테리이다. 무덤 외에 몇 가지 다른 가설이 있는데, 오리온 벨트, 천상의 거울, 물펌프, 발전기, 곡물 창고 등이 있다.

발굴 당시에 새겨진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대피라미드에는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이 남겨 놓은 낙서 중에 '쿠푸왕 제위 17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대피라미드는 쿠푸의 무덤이 되었다. 그런데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쿠푸는 결코 자신의 피라미드에 묻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덤이 아닌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사용되었을까? 음모론자들의 말처럼 정말 외계 기지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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