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중국 역사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상당수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800년 이상 찾지 못하는 칭기즈칸의 무덤이다 몽골 쪽을 통일하고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칭기즈칸은 서하(西夏)를 공격하기 위해 행군하던 도중 67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이때 칭기즈칸은 자신의 무덤을 찾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로 인해 현재까지도 무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칭기즈칸을 매장한 곳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수 만 필의 말로 무덤 위를 밟게 해 땅을 평평하게 고른 뒤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묘비로 삼았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낙타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무덤 위에 그 피를 뿌렸을 뿐이었다 칭기즈칸의 자녀가 제사를 지내고자 할 때는 살해된 새끼낙타의 어미를 길잡이로 삼아 그 자식의 피냄새를 찾아가는 본능에 의지했다 이런 이유로 결국 칭기즈칸의 무덤은 천고의 수수께끼가 돼 버렸다
오늘날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칭기즈칸 무덤의 위치에 대해 몽골국 경내 헨티산 남쪽과 몽골국 항애산 그리고 중국 감숙성 육반산도 또 하나는 내몽골 오르도스 오툭기 내에 있는 천리산이라는네 개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는 학설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공인된 것은 없다 2004년 10월 일본과 몽골의 합동 조사단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았다고 발표했고 영국 중국 등의 매체가 있따라 이 사실을 보도했다 몽골국 헨티성 아브라가 궁전 유적지 인근 지역이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지목됐다
역사 기록서인 흑달사략의 기록과 일치하는 지리적 상황 건축물의 양식과 계량 단위가 일치한다는 점 등이 이곳을 칭기즈칸 행궁 소재지로 볼 수 있으며 때문에 무덤도 존재한다는 주장이었다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역사학 교수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인용해 원나라 황제 밀장 무덤은 궁전 안에 존재할 수 없으며 무덤을 입증하는 확실한 유물이나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역사학 교수는 칭기스칸의 무덤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징기스칸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몽골 부족들을 통합과 동시에 1227년 죽기 전까지 태평양에서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심지어 몽골의 영토는 그의 사후 후계자들에 의해 더욱더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전대 미문의 인물의 묘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사실 징기스칸의 무덤의 위치는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다 심지어 많은 몽골 사람들도 자국의 위대한 인물의 묘가 차라리 영원히 알려지지 않는 것을 바라기도 한다 여태까지 징기스칸의 무덤을 예상하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몽골 북동부 지역인 켄티주다 징기스칸이 태어나기도 한 이곳은 이미 수차례 탐사가 진행되었고 위성까지 동원해서 무덤의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자들이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지역에 대한 징기스칸의 생전에 애착 때문이었다
징기스칸의 출생지이자 야인 시절 징기스칸이 적으로부터 몸을 피한 곳이 켄티 지역의 부르칸 칼둔 산맥 일대다 1227년 징기스칸의 죽음 직후 그의 생을 조명하는 작자 미상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는데 무덤에 관한 일체 언급은 없었지만 부르칸 칼둔에 관한 언급은 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나는 매일 아침 부르칸 칼둔을 향해 기도하며 내 후손들도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언급한 문장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계속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반면 이와 다르게 징기스칸이지도 지도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촐한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징기스칸이 67세로 사망할 당시 그는 지금 중국 티베트 지역의 탕구트 원정을 떠나 있었다 실제로 티베트에서 몽골 국경까지는 500km 넘는 거리인데 당시 기술로 시신이 부패하기 전까지 몽골로 이송하는 것을 불가능했을 것이라 판단 된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기스칸이 중국 서남부 지역에 임시 가묘를 만들어 장례를 치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탈리아 탐험가인 마르코폴로는 약 17년간 중국에서 머무르며 그가 보고들은 내용들을 책으로 엮어 1300년에 발간했다 이때 마르코폴로는 징기스칸의 무덤에 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실제 그 위치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르코폴로의 저서는 징기스칸의 사후 몇 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작성되었고 그가 쿠빌라이 칸에게 정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아직 증명이 완벽하게 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이야기한 것은 아직까지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에 와서 조만간 칭기즈칸이 무덤에서 깨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과학 기술 매체인 텅쉰과기는 2010년부터 칭기즈칸의 무덤을 추적해 온 린위민 박사가 최근 칭기즈칸의 매장지를 55곳으로 압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티아고 분교 소속의 중국계 미국인 연구원인 린위민 박사는 칭기즈칸의 후손을 자처하며 칭기즈칸의 매장지로 추정되는 6000제곱 km 넘는 지역을 인공위성과 무인기 등을 동원에 추적해 왔다
이를 통해 촬영한 8만 4천 여장에 달하는 위성 사진 등을 바탕으로 도로와 하류를 비롯한 대규모 매장 흔적들을 찾아내는데 추적해 왔다 이 과정에는 린위민 박사를 비롯해 1만 명이 넘는 연구 지원자가 함께 참여했다 그 결과 기한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장지를 55섯 곳으로 압축해 낸 것 린위민 박사는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는 대칸의 계곡이란 국제 프로젝트의 주축 인물이기도 하다
그간 니민 박사가 소속된 미국 캘리포니아대를 비롯 몽골 과학원, 국제 몽골 연구협회, 전미 지리학회 등은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아왔다 린위민 박사측에 따르면 곧 압축된 55개 지점에 대한 몽골 현지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800년간 인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혀온 칭기즈칸의 무덤이 중국계 미국인의 손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세계 최대 정복자인 칭기즈칸 테무진이 사망한 것은 1227년 8월 칭기즈칸은 자신이 사망한 뒤 밀장 밀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1만 여필의 말을 동원해 지신을 묻었던 곳을 철저하게 말발굽으로 다지는 식으로 평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일설에 의하면 매장에 참여했던 과정에 마주쳤던 모든 사람을 죽이고 호송 인원과 말들을 함께 순장 시킨 것으로도 전한다 도굴 등에 의한 무덤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로 인해 칭기즈칸의 사망 이후부터 80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칭기즈칸이 매장된 곳의 정확한 위치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역사상 세계 최대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무덤은 전 세계 고고학자들뿐만 아니라 도굴꾼들에게도 늘 관심거리였다
세계 최대 제국을 세운만큼 칭기즈칸의 시신과 함께 막대한 부장품이 묻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몽골을 점령했던 권력자들 역시 칭기즈칸의 무덤에 줄곳 지대한 관심을 표해왔다 특히 만몽 영합정권인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는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일대를 정벌하고 칭기즈칸의 대원전국 옥새를 수중에 넣은 직후 황제를 자처했다
또 청나라 옹정제는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오르도스의 칭기즈칸의 유물을 모은 의관총을 조성해 칭기즈칸을 신성시해 왔다 내몽골 일대를 다스렸던 장제스 역시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칭기즈칸의 의관 총을 상하이 타얼스로 피신시켰다 반대로 일제는 중일 전쟁 때 내몽골 일대를 점령한 뒤 몽강국이란 괴뢰정권을 세워 칭기즈칸의 무덤 발굴에 나섰다 칭기즈칸이 미나모토 요시스네라는 전설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이나모토 요시스는 일본에서 추항 받는 헤이안 말기의 무장으로 칭기즈칸과 활동 시기가 비슷하다 이에 상당수 일본인들은 미나모토 요시스네가 곧 칭기즈칸이라고 믿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에도 몽골과 함께 칭기즈칸 무덤 공동탐사를 진행했다 반면 지금까지 칭기즈칸의 무덤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몽골족 원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원사에 나와 있는 장기련곡이란 내 글자 가 전부였다 기련곡 묻었다는 뜻으로 후대의 학자들은 기련곡의 위치를 두고 갑론을박을 버려왔다 게다가 칭기스칸이 동서양에 걸친 워낙 넓은 대제국을 세운 까닭에 기련곡 위치 역시 중국 몽골 러시아 등지로 의견이 팽팽히 엇갈렸다
현재로서 칭기즈칸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련곡으로 가장 유혹한 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동북 쪽에 있는 컨티산맥 일대다 몽골비사의 등장하는 부르한산이 바로 이곳이다 칭기즈칸이 태어나 청년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성산이다 이에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은 칭기즈칸이 있다면 컨티산맥의 부르한산 어딘가쯤에 매장돼 있을 것으로추정해왔다
반면 중국의 상당 수학자들은 닝샤회족자치구의 류판산 일대를 매장지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는 서하 원정을 벌이던 1227년 8월 류판산 인근에서 67세의 일기로 병사했다 회족자치구인 닝샤는 옛 서하국의 영역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부패하기 마련인데 죽은 시신을 들고 몽골 초원까지 가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류판산설을 주장하는 근거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 때 원나라를 방문했던 동방견물록의 저자 마르코폴로는 칭기즈칸이 알타이 산에 묻혀 있다고 주장했다 알타이 산은 현재 몽골과 신장 위구르자치구 사이에 있는 산맥이다 반면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칭기즈칸이 바이칼 호수에 수장돼 있을 것이란 주장을 펴기도 했다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바이칼 호수는 몽골의 북쪽 국경 너머에 있어 수장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칭기즈칸의 무덤이 중국계 미국인의 손에 의해 발견되면 몽골 출신 칭기즈칸의 중국인화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현재 칭기즈칸이 각 민족통합의 지대한 공을 기록했다며 우상화하고 있다 또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나라를 자신들의 정사에 편입시켜 가르치고 있다 1954년에는 내몽골자치구 오르도스의 칭기즈칸 의관총을 대대적으로 중수한 뒤 5A급 국가 문물로 지정해 짭짤한 관광 수입마저 올리고 있다
2004년에는 몽골족 배우 바썬을 주연으로 한 30부작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칭기즈칸의 중국화에 맞서 몽골에서도 2008년 올란바토르 동쪽 외곽 40m 높이에 칭기즈칸 초대형 기마상을 조성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곳은 칭기즈칸의 황금 채찍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무덤 발굴 등 고고학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중국은 1974년 중국 시안에서 진시왕의 병마용을 발굴해낸 이후부터 이미 세계 정상 수준이다 그 결과 2009년에는 삼국지 위나라 무왕 조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또 2013년에는 대운하로 잘 알려진 수나라 양제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하는 등 매년 굵직굵직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래서 세계는 이러한 중국의 세계 정상 수준의 기술로 조만간 칭기즈칸의 무덤 또한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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